교황청 인준 성모 발현 - 1866년 체코 필리포프의 성모

필리포프의 성모 발현은 다른 성모 발현지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직조공인 막달레나 카데에게 1866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사건으로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입니다.
1866년에 일어난 필리포프의 성모 발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866년 체코 필리포프의 성모 발현

1. 시현자 막달레나 카데 (Magdalena K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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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북부의 룸부르크(Rumburg) 근처의 필립스도르프(Philippsdorf , 오늘날의 필리포프) 마을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막달레나 카데(Magdalena Kade)는 부모님과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유년 시절은 행복하게 보내지만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세에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였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련과 염증, 궤양, 의식의 상실 등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1861년 어머니 역시 세상을 떠나자 막달레나는 오빠인 요세프와(Josef)와 올케언니 체칠리아(Cecilia), 그리고 오빠 부부의 다섯 자녀들과 함께 살게 되는데 그때까지 그녀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결핵과 늑막염으로 고통을 받다가 나중에는 수막뇌염까지 않게 되고 1865년 경에는 가슴부위에 궤양이 나타났고 크기도 점점 확대됩니다.
  • 막달레나가 살고 있던 오두막  
필리포프의성모-시현자-막달레나카데의-오두막
게르스도르프(Gersdorf, Sachsen)에서 온 괴를리히 박사(Dr. Görlich)와 이리코프(Jirikov, Georgswalde)에서 온 울브리히 박사(Dr. Ullbrich) 등 두 명의 의사와 그녀의 가족들은 계속 막달레나 카데를 치료하였지만 그녀의 병은 계속 악화되었고 의사들은 1865년 11월 그녀의 질병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고 곧 그녀는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계속 침대에서만 생활하였고 그녀의 오빠인 요제프가 그녀의 상처를 닦아줄 때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 의식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1865년 12월 21일 그녀의 죽음이 임박한 듯 보이자 막달레나를 위해 이리코프에서 온 프란츠 스토치(Franz Storch) 신부는 종부성사(終傅聖事)를 비롯한 마지막 의식(儀式)을 하였고 막달레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고통으로부터 그녀를 해방시켜 줄 자비로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 성모 발현

종부성사와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3주가 지난 1866년 1월 13일 밤 심한 고통으로 잠들지 못하고 있는 막달레나의 곁에 이웃의 친구인 베로니카 킨더만(Veronika Kindermann)이 밤새도록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기도를 하였고 잠깐 베로니카가 잠들었는데 갑자기 방에 대낮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었고 이에 놀라 막달레나가 고개를 드니 침대 커튼이 젖혀져 있었습니다. 막달레나는 베로니카를 깨웠고 베로니카에게 방안에 밝은 빛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베로니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막달레나카데-성모발현
막달레나의 침대 앞에 하얀빛으로 빛나고 머리에는 황금색 왕관을 쓴 어떤 부인이 서 있었는데 그녀는 그 순간 그 부인이 '하느님의 모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두 손을 모은 후 ‘제 영혼 주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제 정신 저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쁨에 넘치나이다.’라고 기도를 하였고 기도를 마치자 ‘얘야, 이제부터 네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소리가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목소리로 들려왔습니다. 부인은 곧 사라졌고 막달레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큰 목소리로 가족과 친척들을 불렀고 몸에서 붕대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밤인 1866년 1월 13일 누구의 도움 없이 침대에서 그녀는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가족들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아침에 빵을 구입하러 베이커리에 갔고 마을 사람들이 그녀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다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어젯밤에 성모 마리아를 봤어요. 제가 건강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게 됐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3. 발현 이후

기적적인 치유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막달레나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그녀는 그녀의 목격담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1866년 5월부터는 먼 곳에서부터 순례자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1866년 5월에는 성모 발현이 있었던 막달레나의 침실의 낡은 테이블로 제대를 만들고 그녀의 침대에 아름답게 수놓은 베개를 놓아 정리한 후 임시 예배실로 바꾸게 됩니다.
 
막달레나의 기적을 치유를 축하하는 1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1867년 1월 8일 전혀 걸을 수 없는 이리코프에서 온 막달레나 랑한스(Magdalena Langhans)를 친척들이 어렵게 데리고 와 막달레나가 누워있던 그 침대에 눕혔더니 랑한스는 갑자기 일어나 온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는 기적의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식 역시 삽시간에 퍼져나가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더욱 급증하였고 결국 이리코프의 스토치 신부는 막달레나가 처음 성모발현을 목격한 집과 부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막달레나는 기적의 치유를 받은 후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매각하여 교회성역화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협조하였으며 막달레나가 성모님으로부터 기적의 치유를 받은 침대는 성당 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대성당은 1930 년대 말, 중부 유럽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됩니다.

4. 성지

  • 필리포프 대성당
필피포프의대성당
  • 필리포프 성모상
필리포프의성모상
1886년 9월 13일 카덴호프(Kathenhof)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한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의 두 다리를 린넨으로 싸 필리포프의 성모님 발아래에 놓았는데 그 순간 아들은 매우 뜨거운 열기를 느꼈고 3일 후 완전하게 치유됩니다.

5. 인가

성모 발현 이후 11번의 치유와 은총의 자료를 프란츠 스토치 신부가 보관하고 있었고 이에 기적에 대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모든 사건에 대해 면밀하게 검증하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면담을 시작하였습니다.
 
1885년 교황 비오 11세의 교령(敎令)을 바탕으로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필리포프의 성모발현을 공인한다고 발표하였으며 이곳은 19세기에 보헤미아 지방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유일한 순례지가 됩니다.

6. 위치


  • 필리포프 대성당

  • 필리포프 대성당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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