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인준 성모 발현 - 1830년 프랑스 기적의 매달의 성모(파리 뤼뒤박)
기적의 메달의 성모
1. 성모 발현
- 첫 번째 발현

1830년 7월 18일 밤 카타리나 라뷔레 수녀는 잠든 지 2시간 정도가 지난 11시 30분경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깹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3번 정도 카타리나 수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 아이는 잠에서 깬 카타리나 수녀에게 '성당에 성모님께서 계시니 가보라'고 말하고 이 말을 들은 카타리나 수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도를 하였던 때가 왔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는 그러자 카타리나 수녀에게 '이미 밤이 깊어 아무도 없으니 성당으로 가서 성모님을 만나라'고 이야기하였고 카타리나 수녀는 아이와 함께 성당으로 향합니다.
성당은 문이 잠겨 있었으나 손을 대자 바로 저절로 열렸고 안으로 들어가자 성당 안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제대와 샹들리에 역시 모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먼저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카타리나 수녀도 안으로 들어갔고 제단 옆 의자에 아이가 앉자 카타리나 수녀도 그곳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잠시 후 카타리나 수녀는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듣게 되고 곧 성모 마리아가 제대의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의자에 앉으셨는데 손에는 반지모석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카타리나 수녀는 하얀 옷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수호천사임을 깨달았고 카타리나 수녀에게 수호천사는 이분이 성모 마리아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카타리나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는 앞으로 프랑스에 닥쳐올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로 인해 또다시 십자가와 신앙이 모독을 당할 것이고 파리의 대주교가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는 아마도 그로부터 40년 후인 1870년 프랑스에서 일어날 정치적, 사회적 혼란(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을 예언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약 1주일 후 성모님의 예언은 일부 실현되는데 1830년 7월 27일 7월 혁명(La Révolution de Juillet)이 발발하였고 이로 인해 파리는 총성이 울려댔고 파리의 도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졌으며 사망자들은 방치되었고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 속을 죽음의 숨결이 드나들었습니다. 부르봉 왕조의 샤를 10세는 왕위에서 추방되어 영국으로 도피하였고 많은 주교들과 수도자들, 신부들이 투옥되고 살해당하였으며 성상들은 넘어뜨려지고 십자가는 짓밟혀졌으며 교회는 신성함을 모독당하였습니다.
- 두 번째 발현
작은 금빛 십자가가 꼭대기에 달린 금빛 지구를 손에 들고 있었던 성모 마리아는 양쪽 손가락에 3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눈부신 빛들이 반지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성모마리아가 서 있는 곳에는 하얀 지구가 있었고 성모마리아의 말 아래에는 초록빛의 뱀이 있었습니다.
성모마리아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카타리나 수녀는 성모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성모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모마리아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카타리나 수녀는 성모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성모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보고 있는 이 둥근 지구는 전 세계, 특히 프랑스를,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빛들은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쏟아부어 주는 은총을 상징한다.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 보석은 영혼들이 간청하고 있는 것을 잊고 있는 은총이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손에 있던 금빛 지구가 사라졌고 발아래 있었던 지구의 위로 빛줄기가 흘러나오면서 성모님의 주위를 알의 형태를 한 둥근 테두리가 둘러쌌는데 그 알의 안쪽으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 금빛 글자가 써집니다.
이 모형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메달을 몸에 거는 사람들에게 은총이 내려질 것이다. 메달은 목에 걸면 된다. 신뢰를 가지고 메달을 거는 사람에게는 은총이 많이 있을 것이다.
성모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그 그림이 뒤집혀지면서 뒤쪽이 나타났는데 커다란 M글자 위에 옆쪽으로 막대기가 있었고 그 위쪽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M글자 아래에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을 상징하는 두 새의 심장이 있었으며 예수 성심은 가시관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성모 성심은 칼로 꿰찔려져 있었으며 정체를 12개의 별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카타리나 수녀는 알라델 신부를 찾아가 성모 발현과 메달의 주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알라델 신부는 이 모든 것이 카타리나 수녀의 상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모 마리아께 카타리나 수녀가 이야기하자 성모 마리아는 카타리나 수녀에게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이야기합니다.
때가 오면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따르게 될 것이다. 그는 나의 종이므로 그를 슬프게 하면 안 된다.
카타리나 수녀의 인내심이 결실을 맺게 되어 곧 알라델 신부는 동료 에티엔 신부를 매개로 당시 파리의 대주교였던 드 켈렝 몬시뇰에게 메달 주조를 허락받기 위해 움직이고 대주교는 성모님의 발현하여 메달의 주조를 요청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의 신앙이나 신자들의 신심과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주조를 인준하여 주면서 자신이 최초로 메달을 걸어보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성모님의 원죄없으신 잉태에 대한 대주교의 신심은 아주 특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로 메달 주조를 인준한 것을 보면 요청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2. 기적의 메달
1832년 6월 30일, 원죄없으신 잉태의 메달 2000개가 만들어지게 되고 알라델 신부로부터 메달을 받은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이렇게 말합니다.이번에는 이것을 퍼뜨려야 합니다.
이때 카타리나 수녀는 최조로 주조된 메달을 몇 개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까지도 그중의 10개는 파리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본원의 보관창고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후 메달의 보급이 급속하게 퍼지게 되면서 메달 그 자체가 기적이 되어갔고 4년 후인 1836년까지 약 200만 개의 메달이 주조되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책상 위의 십자가 아래에 이 메달을 두기도 합니다.
알라델 신부가 이 메달에 의한 기적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의하면 이 메달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치유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의 회개와 전쟁 사고에서의 보호가 일어났다고 하며 이러한 기적들로 인해 메달의 초창기 정식 명칭은 원죄없으신 잉태의 메달이었으나 그 후 신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며 애용되었습니다.
3. 시현자 카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1806년 5월 2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팽레무티에서 11명의 자녀 중 9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조에 라부레((Zoe Labouré)로 언니가 수녀원에 입회하면서 집을 떠나자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면서 오빠의 식당에서 일을 하였는데 그러던 중 꿈에서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 de Paul, 1581)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24세가 되던 1830년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천주교 수녀회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도회에 입회하고 수녀가 되면서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을 받게 됩니다
622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에 의해 설립된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도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수도회로 병자를 위해 순회치료를 하고 주요 요양원이나 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는 수도회였습니다.
성모 발현을 목격하고 알라델 신부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녀는 절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약속을 받아 냈고 이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기적의 당사자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 후로도 조용한 수도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고 훗날 가톨릭 교회의 정식 조사가 있을 때에도 발현에 대해 상세하게 내용을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기억상실을 이유로 증언하지 않습니다.
교황 비오 11세 때인 1933년,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가 선종하고 57년 뒤 그녀의 시복을 위해 시신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사람이 사망하면 눈은 급속하게 어두운 빛깔로 변하고 함몰되며 부패되어야 하는데 카타리나 수녀의 눈은 그때까지도 푸른 빛깔을 보존하고 있으며 유해 역시 그동안 전혀 부패되지 않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얼마 뒤 카타리나 수녀의 시신은 유리관에 보관되어 뤼뒤박 기적의 성모 성당에 성모 발현 장소에 만들어진 제단 아래에 안치되었고 그곳에는 현재까지도 매일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카타리나 수녀는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4. 성지
- 예배당 입구와 안쪽 마당
-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상
- 묵주에 달려있는 기적의패
만약 시중에서 구입할 경우 동그란 부분의 글씨가 일부 지워지거나 성모님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나 있는 등의 가짜도 만이 유통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6. 위치
+ 기적의 메달의 성모 발현 성당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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