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인준 성모 발현 - 1871년 프랑스 퐁맹의 성모
1871년, 퐁맹의 성모 발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871년 프랑스 퐁맹의 성모 발현
1. 당시 상황
1870년 7월 19일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는 프로이센 왕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프랑스 제국은 처음 며칠 동안 패전을 거듭하였으며 8만여 명의 병사들과 함께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9월 1일, 프로이센 군에게 사로잡혀 포로 신세가 되었습니다. 프로이센군에게 프랑스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점령당하였고 1871년 1월 17일에는 파리가 포위당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프랑스인들은 조국을 구해달라고 성모 마리아에게 호소하며 일심동체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2. 성모 발현
1871년 1월 17일 저녁 무렵, 12살의 외젠느는 아버지를 도와 마을 중앙에 있는 한 헛간에서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공중에서 한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외젠느에게 미소를 보인 부인은 다가오라는 듯이 손을 말없이 아래로 폈고 몇 분 뒤 외젠느를 뒤따라 나온 10살의 요셉 바르베데트도 부인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 역시 헛간에서 나왔지만 아버지는 부인을 보지 못하였고 외젠느와 요셉 바르베데트는 어머니를 데리고 오지만 어머니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의 수녀들을 불러 오지만 아무도 그 부인을 볼 수 없었습니다.아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퍼졌고 게렝 신부를 비롯한 많은 마을 주민들이 두 소년의 주변에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 당시의 헛간과 성모 마리아 발현 위치
외젠느는 자신이 본 부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번쩍이는 황금색 별들로 가득한 푸른색의 진한 가운을 입고 있었고 옷의 소매는 손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으며 금빛 리본이 장미 매듭 모양으로 장식된 푸른색의 슬리퍼를 발에 신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두건이 팔꿈치까지 내려와 완전히 머리카락은 가려져 있었고 두 손에는 십자가를 가슴에 들고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소년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자 소년들 앞에 다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고 사방은 온통 별들로 가득해졌습니다.
주민들은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바쳤고 그러자 여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별들이 서로 짝을 지어 그녀의 발아래로 모여들었고 주민들이 묵주기도를 마친 후에 마니피캇을 노래하자 흰색 깃발이 나타납니다.
흰색 깃발에 금색으로 글씨가 써져 있었는데 거기에 나타난 금빛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MAIS PRIEZ MES ENFANTS, DIEU VOUS EXAUCERA EN PEU DE TEMPS. MON FILS SE LAISSE TOUCHER.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는 오래지 않아 대답을 주실 것이다. 내 아들을 움직이게 하여라.
마니피캇이 끝나자 성모 마리아는 어깨 높이로 들고 있던 양손을 뻗어 팔꿈치를 뒤쪽으로 살짝 구부리면서 자신의 몸 쪽으로 가까이 갖다 붙였고 그러자 거대한 붉은 십자가가 나타났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 십자가를 양손에 잡아 쥐었고 주민들이 보속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조금 뒤 붉은 십자가는 사라졌고 성모 마리아는 손을 아래로 펼쳐 보였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발아래 곧이어 거대한 흰색 베일 하나가 나타났고 이것은 성모의 얼굴까지 천천히 위로 올라갔으며 베일이 얼굴까지 올라가자 성모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여주었고 저녁 9시경 저녁 기도가 끝나자 성모 마리아도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였고 주민들은 모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성모 발현 이후
아이들과 주민 모두가 기도를 마친 바로 그 시각 프로이센군의 지휘관이었던 본 슈이트 장군은 퐁맹이 있는 라발 시를 향한 침공 작전을 개시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라발 시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를 상부로부터 받아 퐁맹은 전쟁의 참화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오랜 전쟁 끝에 1871년 1월 23일 두 나라 사이의 휴전이 체결되었습니다.오래지 않아 대답을 주실 것이라고 했던 성모 마리아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며 퐁맹에서 징집되었던 38명의 청년들과 소년들도 며칠 후 모두 무사히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4. 인가
성모 발현 후 퐁맹에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방문객들이 방문하였고 발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소년은 조사단의 방문을 환영하였고 성실하게 임하였으며 주님 봉헌 축일 날이었던 1872년 2월 2일, 라발의 교구장 위카르 주교에 의해 퐁맹에서의 발현과 관련한 특별 교령이 발표되었고 참으로 퐁맹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5. 성지
- 퐁맹 대성당
- 퐁맹 대성당 내부
- 퐁맹의 성모
6. 위치
- 퐁맹의 성모 발현 동영상
- 퐁맹 대성당 모습
+ 다른 성모 발현지도 알아보기